
스스로 기억하는 시스템
AI에게 내 뇌를 맡겨보기로 했다 — 2편. 프로젝트가 끝나면 사라지는 맥락을 구조로 잡고, AI가 의사결정 패턴을 학습하게 만든 이야기
프로젝트가 끝나면 뭐가 남을까요?
프로젝트가 끝나면 코드, 문서, 디자인 파일의 결과물은 남습니다. 하지만 그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맥락은 대부분 사라지거나 활용할 수 없는 형태로 남습니다.
유실 될 수 있는 맥락을 생각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.
- 의사결정과 그 근거: A안과 B안을 놓고 A를 선택했다면, 왜 B를 버렸는지. 6개월 뒤 비슷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그때의 판단 근거에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.
- 시행착오와 해결 과정: 3일을 막혔다가 풀린 경험. 기록되어 있지 않으면 다음에도 같은 시간을 씁니다.
- 회고의 인사이트: 프로젝트를 돌아보며 얻은 교훈은 있는데, 그걸 다음 프로젝트에 연결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. 회고를 반영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건 또 다른 문제죠.
- 나의 판단 패턴: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반복하는지. 자기 자신의 습관은 의식하기 어렵습니다.
이런 맥락이 기록되어 있다 해도, 다음 의사결정에서 꺼내 쓸 수 있는 구조가 없으면 활용할 수 없습니다. AI와 일하는 환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— 구조화되지 않은 맥락은 AI도 쓸 수 없으니까요.

시작하고, 끝내고, 지식을 남기는 구조
이 문제를 풀기 위해 Initiative라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. 개발, 글쓰기, 커리어 전략, 학습 — 뭐든 아이디어가 생기면 Initiative로 시작하는 게 규칙입니다. 범위를 잡고, 리서치하고, 실행 계획을 세운 뒤 실행을 합니다. 실행이 끝나면 회고와 함께 마무리하는 흐름은 모든 종류의 일에 적용 가능한 기본적인 흐름입니다.
거기에 몇가지 요소만 더 추가해보았습니다.
프로젝트가 끝날 때 반드시 일어나는 두 가지:
첫째, 지식이 추출됩니다. 의사결정의 근거, 리서치 결과, 실험 데이터가 다음 프로젝트에서 꺼내 쓸 수 있는 형태로 정리됩니다.
둘째, 패턴이 학습됩니다.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 AI가 관찰하고 기록합니다. 그리고 AI가 좋은 답을 냈을 때, 그 원인을 분석하고 이 역시 기록합니다.
AI가 잡아낸 습관
저는 프로젝트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기 전에 항상 "커밋하고 closing 진입하자"라고 말합니다. 작업물을 저장한 다음에야 마무리를 시작하는 습관인데, 여러 프로젝트에 걸쳐 이 패턴이 반복되는 걸 AI가 관찰했습니다. "Commit-then-Close"라는 이름까지 붙여서 패턴으로 기록한 겁니다.
그 이후로 마무리 단계에 들어갈 때 AI가 먼저 물어봅니다. "커밋하고 진행할까요?"
이런 식으로 축적된 패턴이 31개 있습니다. 몇 가지만 더 보여드리면:
- Parallel First: 독립적인 작업이 여러 개 있으면 순서대로가 아니라 동시에 돌립니다. 4~8개를 병렬로 진행하는 게 제 기본 모드인데, AI가 이걸 관찰한 뒤로는 작업을 나눌 때 "이건 병렬로 돌릴 수 있겠다"고 먼저 제안합니다.
- Pragmatic Completion: 핵심 산출물이 나왔으면 부수적인 건 생략해도 됩니다.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싶은 충동이 있지만, AI가 "핵심은 끝났는데 나머지도 할까요?"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"됐어"라고 답합니다. 이 패턴이 기록된 이후로 AI가 부수 작업을 먼저 제안하지 않게 됐습니다.
- Validate Incrementally: 프로토타입을 먼저 만들고, 돌아가는 걸 확인한 다음에 확장합니다. "Level 2까지는 돼야 평가가 가능하다"는 게 제 기준인데, AI가 이걸 알고 있으니 설계 논의가 길어지면 "일단 여기까지 만들어서 확인할까요?"라고 끊어줍니다.
5개 그룹(실행 전략, 판단 기준, 구조 감각, 사고 패턴, 산출물 관리)으로 분류되어 있고, AI가 이 패턴들을 참조해서 제안합니다. 프로젝트를 할수록 정교해집니다.

173개의 프로젝트가 지나간 뒤
이 구조로 대략 2달동안 173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. 이제 새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AI가 이전 맥락을 알고 있습니다. "이전에 비슷한 상황에서 이렇게 결정했는데, 이번에도 같은 방향으로 갈까요?" 매번 처음부터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.
1편에서 말한 5가지 조건 중 세 가지가 이것만으로 풀립니다.
- 과정 자체가 지식으로 쌓이고,
- AI가 의사결정 패턴을 학습하고,
- 프로젝트가 늘어나도 무너지지 않는 구조.
아직은 한 가지 종류의 능력입니다. 프로젝트를 시작하고, 끝내고, 지식을 남기는 것.
그런데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, 이 과정 자체가 이야기가 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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